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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DNA

법조계의 최다르크, 최수진 변호사(법학·96졸)를 만나다

최수진동문


고객의 작은 권리도 지나치지 않고 찾아오는 변호사가 있습니다. 바로 법조계의 잔다르크로 불리우는 최수진 변호사인데요! 2009년 ‘베스킨라빈스 사건’에 대해 승소하면서 유명해진 후, 2011년 통신사 KT의 갑작스러운 2G 서비스 종료를 집행정지 시키고 몇 달 전 스타벅스의 이벤트 꼼수까지 막아내며 다시 화제에 올랐는데요. 화제의 인물, 최수진 동문을 이화투데이가 만나 보았습니다.  


Q.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우선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여대 법학과를 96년도에 졸업하고 2005년부터 변호사 일을 시작한, 13년차 변호사인 최수진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Q.법학과 출신이신데, 선배님의 원래 꿈이 변호사였나요? 변호사를 꿈꾸게 되신 계기도 궁금합니다. 

사실 변호사는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꿈 중에 하나였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소설에서 주인공이었던 여자 변호사가 너무 멋있어보여서 그 때부터 변호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런데 그 때만 해도 ‘반드시 해야겠다’라기 보다는 막연하게 바라던 정도였는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변호사를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다들 고시를 준비하는 분위기였고 친구들도 하나 둘 씩 합격하는 걸 보면서 저도 변호사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Q.선배님의 대학시절이 궁금합니다. 선배님께서는 이화 재학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정말 부끄러운데, 저는 미팅이라는 미팅은 다 나갔던 학생이었습니다. 심지어 2학년인데 1학년이라고 속이고 나간 적도 있었어요.(웃음) 학점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술도 많이 먹으러 다니고 놀았죠. 고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마음에 의무감은 있었지만, 실제로 대학 때에는 공부를 많이 안 했던 것 같아요. 동아리 활동도 많이 하지는 않았었는데, 신입생 때 산악 동아리를 잠깐 했었어요. 동아리 홍보주간에 연합 산악동아리 홍보를 하러 온 잘 생긴 남학생을 보고 친구와 바로 가입을 했죠. 그런데 동아리 모임에 가도 그 남학생은 그 날 이후로는 찾아볼 수가 없더라고요. 그냥 동아리에 새내기 유치를 위해서 잠시 얼굴만 비친 거였던 거예요. 그래서 실망하고, 또 등산도 힘들어서 한 번 등산한 이후로 나가지 않았어요. 

 

Q.대학 시절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으신가요?

신촌에서 술 먹던 기억이 대다수인데요.(웃음) 그리고 학교 앞에 ‘민주 떡볶이’ 가서 선배들이랑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가고, 또 ‘오리지날’이라는 튀김집이 있었는데 튀김이 맛있어서 자주 먹으러 다녔던 게 기억나네요. 그리고 제가 테트리스 게임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학교 주변에 있던 오락실에 거의 매일 가서 최소 한 게임 이상 테트리스를 했어요. 심지어 고시 공부할 때까지 계속 했었어요. 그리고 악세서리도 좋아해서 학교 주변에 아기자기한 귀걸이 친구랑 구경하면서 몇 개씩 사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Q.이화 재학 시절 인상 깊은 수업이나 교수님이 있으신가요?

기억에 남는 교수님은 여러분이 계시지만, 친구들끼리 ‘뽀식이’라고 부르던 형법 수업의 이용식 교수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키 크고 마르신 분이었는데, 수업도 잘 가르쳐주셨거든요. 또 교수님이 당시 독일에서 공부하시고 교수가 되신 지 얼마 되지 않을 때라 풋풋하시고 학생들 눈도 잘 못 쳐다보셔서, 그런 점이 재미있으면서도 귀엽게 보이기도 했었어요. 그러면서 또 말씀하시는 내용에서는 정말 제자들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상법수업을 강의하셨던 교수님도 기억이 나네요. 그 교수님은 수업 시간이 되면 칼같이 강의실 앞문과 뒷문을 모두 잠가서 절대 못 들어오게 하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유머도 있고 나름 재밌으신 분이시더라고요.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기억에 남는 수업은, 우선 <교양 수영>이 기억나네요. 제가 대학을 다녔던 당시에는 수영이 필수과목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수영을 하나도 못해서 입학 전에 수영을 배우고 들어갔음에도 많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과 주말에 롯데월드 수영장에 연습하러 가기도 했었는데, 결국엔 C학점을 맞았습니다.(웃음) 그리고 당시 학교에서 3대 명 강의로 꼽혔던 강의 중에 <철학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이 있었어요. 호기심에 그 과목을 수강했는데, 첫 수업에 교수님께서 ‘우체통이 왜 빨간지’에 대해서 레포트를 제출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 충격을 받고 수강철회를 했던 게 기억나네요.

 

Q.선배님께서는 일명 ‘대기업 스나이퍼’로 불리며 여러 기업들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하신 것으로 유명한데요. 2009년 베스킨 라빈스 소송에서 승소하고, 2011년 통신사 KT 소송에서는 집행정지처분을 이끌어내셨고 얼마 전 스타벅스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하는 등 그 때마다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반응을 보고 기분이 어떠셨나요? 

이 표현은 네티즌들이 붙여주신 것 같은데 저한테는 너무 과분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떤 사회 정의를 실현하겠다거나 대기업의 횡포를 바로잡겠다는 그런 대단한 소명의식이나 사명감이 투철한 건 아니거든요. 소비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기업들의 태도에 화가 나서 제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렇게 불러 주시니 저로서는 감사하고 과분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Q.이렇게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소송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소비자의 편에 서서 돕기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생각해보면 다 저와 관련 있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우선 베스킨라빈스 사건 때는 무료로 일본 패키지여행을 보내준다는 이벤트에 제가 당첨됐었죠. 그런데 당첨되고 나니 애초에 없었던 조건을 달면서 태세 전환에 들어가더라고요. 계속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경품 지급을 미루고 말을 바꿨습니다. 그러면서 ‘저희가 이런 이벤트 한 두 번 하는 줄 아시냐’며 ‘법 조항을 찾아보시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사과만 제대로 했어도 소송까지 가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소비자를 우롱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았기에 결국 소송을 진행했고 승소했습니다. 그런데 베스킨라빈스는 패소 이후에도 계속 배상금 지급을 미루다가 결국 에어컨까지 압류 당하더라고요. 이런 사건 경험이 있다 보니 스타벅스의 이벤트 꼼수에 답답한 마음으로 저를 찾아오신 의뢰인의 부탁도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스타벅스가 1년 동안 무료 음료를 지급하겠다고 이벤트를 내걸었는데, 막상 당첨자가 나오고 나니 ‘무료 음료 1잔’이라고 말을 바꿨고, 결국 법정까지 가서야 음료 364일 치 가격을 손해배상금으로 물게 됐죠. 사실 이 회사들에게 있어서 이 금액들은 그렇게 큰 액수가 아닌데도 소비자를 우습게 보는 태도에 가장 화가 났어요. 


KT 소송 같은 경우는 결국 안타깝게 패소로 끝났었지만 어쨌든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임했습니다. 사실 저는 KT 이용자는 아니었거든요. 당시 쟁점이 핸드폰 번호를 010 으로 바꾸지 않으면 스마트폰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거였어요. 2G 통신망 폐지가 서비스의 폐지 뿐 아니라, 번호까지 같이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이게 용인이 되면 다른 통신사에도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겠다는 문제의식도 있었고, 2G 통신망을 폐지하더라도 미리 고지를 해주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절차에 흠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KT 소송 전에 010 번호 통합이 위헌이라는 헌법 소원을 먼저 제출했었는데, 011, 016 등의 번호를 사용하시는 분들이 또 다 2G 통신망 이용자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소송까지 맡게 된 거죠. 010 번호통합은 당장 제 문제이기도 했고, 또 KT 관련 건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저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에 내 문제라는 생각을 하면서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Q.베스킨라빈스를 상대로 승소한 뒤에는 배상금을 전액 기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힘든 소송 끝에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당시 아이티가 지진으로 힘들 때였기 때문에 구호단체에 기부했습니다. 막상 배상금을 받았을 때는 공돈이 생겨서 신났지만 알고 보니 그 소송 이후로 베스킨라빈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리해고 됐더라고요. 물론 회사가 잘못을 한 건 맞지만, 그래도 그 사건으로 인해 밥줄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그 배상금이 ‘피 묻은 돈’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돈으로 뭘 사거나, 여행을 가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남편이 먼저 기부를 권유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아이티 지진 피해자를 돕자는 생각으로 기부하게 됐죠. 


Q.대기업을 상대로 소송하는 과정에서 힘드신 적은 없으셨나요? 

베스킨라빈스나 스타벅스 사건은 사건 자체는 쉬운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아닌 다른 변호사가 맡았어도 승소했을 거예요. 그런데 KT 소송 같은 경우는 힘들게 진행을 했었어요. 대기업이기 때문에 힘들었다기 보다는 소송을 하면서 벽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입증하기 위해 신청한 증거가 채택되지 않거나, 많은 소비자들이 눈물 흘리고 하소연을 하는 것에 기업이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죠. 그런 사건들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일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해요. 결과가 나온 후에 굉장히 감정적으로 힘들었어요. 감정을 추스르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좀 걸렸죠.

 

Q.선배님께서 맡으셨던 소송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으신가요? 

변호사 2~3년차 때의 일인데, 의뢰인이 아내를 살해한 남편이었어요. 당시 그 분이 구치소에 있었는데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하더라고요.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에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아서 평생을 감옥에 있어야 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면회를 할 때 희망적인 얘기를 듣고 싶어 했어요. 집행유예로 나갈 수 있다거나 형을 짧게 받을 수 있다는 그런 희망적인 얘기를 듣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얘기를 쉽게 해줄 수 없어서 그래도 제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을 최대한 해 줬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첫 재판 전날에 구치소 안에서 자살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었죠. 그 사건 후에 의뢰인의 변호사로서 ‘너무 못해준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예전에 저희 과에 형사소송법의 대가인 이재상 교수님이 계셨는데, 수업시간에 당신 변호사 시절에 대해 얘기해 준 적이 있어요. 이재상 교수님은 검사를 하시다가 변호사로 개업하셨는데, 형사사건 의뢰인들이 자꾸만 구치소로 면회를 와 달라고 했다고 해요. 그때 교수님은 나는 바깥에서 담당 검사를 만나서 사건 설명도 하고, 구속을 면하거나 형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왜 자꾸 구치소로 면회를 오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셨대요. 그런데 나중에 형사소송법을 공부하고 책을 쓰시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이 법률적인 조언뿐만 아니라 의뢰인들의 불안함을 위안해주고 안정시켜주는 것도 변호사의 역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던 적이 있었거든요. 저도 그렇게 재판 전날 돌아가신 분의 일을 겪으면서 그 말이 많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의뢰인을 다독여주고 위로해주는 변호사의 역할을 내가 놓치지 않도록, 물론 의뢰인들에게 헛된 희망을 줘서는 안 되겠지만, 희망을 잃지 않도록 노력 하고 있어요. 

 

Q.변호사로서 가장 뜻깊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당연히 소송에서 승소했을 때입니다. 변호사로서 의뢰인들이 기뻐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몇 년 전 국선 사건이었는데 의뢰인이 80대 할아버지셨거든요. 그런데 그 분 사건이 결과가 좋았어요. 그래서 그 할아버지께서 감사의 표시로 제가 좋아하는 노란색 국화꽃 화분을 사오신거에요. 굉장히 가난하셨던 할아버지셨는데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하시며 그 화분을 주셨을 때 가장 기뻤던 습니다.


최수진동문


Q.최근 대기업의 경품 꼼수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례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요즘 문의를 주시는 분들을 보면 굉장히 대처를 잘 하시고 계시더라고요. 미리 화면을 캡처해 놓는다든지, 통화 내용을 녹음해놓는다든지 등이요. 그렇게 일단 증거를 남겨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됐을 때 증거 자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법적 소송까지 가기 전에 소비자원 같은 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고요. 그리고 이벤트에 참여할 때 정확히 잘 알아보고 참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대기업들이 소비자를 우습게보지 않는 것이 가장 우선이겠죠. 

 

Q.마지막으로 이화의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후배님들이 너무나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작년 전국적으로 일었던 촛불 시위도 이화가 원동력이 되었던 거잖아요.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지만, 지금 나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해보세요. 나이가 들면 제약들도 생기기 때문에 가능성 많은 나이에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는 것이죠. 예전 수업시간에 민사소송법 교수님께서 저희에게 해주셨던 말씀이 기억나요. 판사 출신이시고 키도 크고 아름다운 분이셔서 학부생 때 교수님을 보면서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교수님께서 저희에게 ‘나는 너희가 너무 부럽다’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당신께서는 이미 결혼도 하셨고 직업도 안정적이었지만 저희 학생들은 기회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 때문이었죠. 그 당시에는 그 말씀이 잘 이해가 안 갔었는데, 이제는 그 말이 많이 공감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후배들에게 가능성과 기회가 많이 열려있을 때 하고 싶은 것들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습니다. 

‘대기업 스나이퍼’라는 강렬한 별명과는 다르게 굉장히 친절하고 나긋하게 리포터들을 맞아주신 최수진 동문님 덕분에 즐거웠던 인터뷰를 즐겁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화에서의 대학시절의 추억부터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까지, 리포터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변호사님의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대기업을 향한 저항의 의미로 여전히 016 번호와 2G 휴대폰을 사용한다는 최수진 변호사님은 ‘강한 자에게는 강하게, 약한 자에게는 약하게’를 몸소 실천하고 계셨습니다. 최근 사무실을 옮겨 대학 동기와 함께  ‘법무법인 혜승’을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오늘도 대기업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며 ‘소비자를 우습게보지 말라’고 묵직한 한 방을 던지는 최수진 동문님을 응원합니다!


이화투데이 리포터 전혜진(국어국문학 15), 정서희(커뮤니케이션 ㆍ미디어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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