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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청와대 최초 여성 경호관에서 배우가 되기까지, 이수련 동문(영문·04졸)

이수련


이화인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꿈에 대해서 고민하곤 합니다. 특히나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과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최근 한 강연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 거침없이 도전하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이화인이 있다고 해서 이화투데이 리포터가 만나봤습니다. 바로 배우 이수련 동문(영문·04졸)입니다. 청와대 최초 여성 경호관으로 10년을 근무하다가 명예롭고 안정적인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배우로서의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이수련 동문. 지금부터 만나볼까요?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00학번이고 본명은 이미령입니다. 방송명은 이수련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 여성 1호 경호관 출신 배우로 많이 소개가 됐습니다. 지금까지는 중국에서 방송된 한중합작드라마를 주로 했고, 한국에서도 신인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최근 KBS <강연 100℃>에 출연해서 ‘청와대 최초 여성 경호관 출신 배우’라는 이색적인 이력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다는 반응이었는데요. 이런 반응을 보고 느낌이 어떠셨나요? 

저는 굉장히 의아했어요. 제가 2015년에 KBS ‘인간극장’에도 출연을 했었는데 그 때 처음 청와대 경호관 경력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죠. 그런데 물론 이 직업이 밖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는 졸업하자마자 10년 동안 청와대 안에서 경호관 생활을 했기 때문에 거기서 전업을 했다는 사실이 매스컴에서 화제가 되고 관심을 많은 관심을 받는 게 신기했어요.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웠던 건, 지금은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데 자꾸만 이전 경력만 조명이 되면 단순히 짧은 화젯거리로 소비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들었죠. 물론 지금은 신인배우고 제가 저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하기 때문에 이런 관심이 감사하기는 하지만, 저는 굉장히 진지한 마음으로 전업을 했었거든요. 반짝하고 없어지는 이슈가 아니라 길고 오래가는 배우로 남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Q.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셨는데요. 전공과는 다소 관련이 적어보이는 청와대 경호관이라는 직업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을 다니면서 취업 준비를 하잖아요. 그리고 취업을 준비 하면서도 대부분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를 많이 고려하죠. 저 같은 경우에도 어렸을 때부터 뚜렷한 꿈이 있던 건 아니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보다는 ‘무엇을 해야 될까’에 더 초점을 맞춰 살았었죠. 그러다 대학교 때 SBS에서 공채 리포터를 뽑는 것에 도전해서 2003년도부터 방송활동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리포터란 직업이 프리랜서다보니 안정적이지 않아서 다시 진로를 고민하게 됐고, 어차피 방송활동을 시작한 김에 기자나 PD가 돼보자는 꿈을 키우게 되면서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언론고시를 준비하려면 신문을 많이 봐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 때 시험을 준비하면서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대통령 경호실에서 금녀(禁女)의 벽을 허물고 최초로 여성 경호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됐어요. 그런데 그 순간 그게 너무 재밌어 보이는 거예요. 또 그냥 평범하게 회사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나중에 다른 일을 하더라도 이 일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죠. 경호관 시험은 7급 공무원 시험인데 마침 그게 또 준비했던 언론고시랑 시험 스타일이 상당히 비슷했어요. 그리고 영어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영어면접 등에서 전공 공부도 도움이 됐고요. 또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에 체력이나 신체검사에서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필기시험, 신체검사, 체력측정 등을 거치고 4단계에 걸친 심층면접까지 보고 최종 선발되어 일하다보니 10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가더라고요.(웃음)


이수련


Q. 최초의 청와대 여성 경호관이라는 점에서 스스로도 자랑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 불모지의 영역을 개척하며 마주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으로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굉장히 많았습니다. 저는 또 일명 ‘수녀라인’이라고 하는 여중-여고-여대를 나왔기 때문에 남자들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에 대해 깊게 접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경호실이라는 곳은 특히나 사회보다도 더 남성주의적인 군대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조직이잖아요. 실제로 사관학교 출신인 분들도 많고, 또 업무상 군이나 경찰과 같은 조직을 통제해야 할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되게 사소한 것부터 문제를 겪었어요. 예를 들면, 곤란한 상황이라 그냥 웃었는데 ‘왜 경호원이 이유 없이 웃느냐’는 지적을 받기도 하고, 화장이나 옷을 입는 부분에서도 당시 경호실 내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맞춰가느라 어려움이 있었죠. 또 사소한 말이라도 섬세하거나 따뜻하기 보다는 엄격했기 때문에 그게 퉁명스럽다고 느껴져서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정말 한 번은 그런 분위기가 너무 힘들어서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엉엉 울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도 시간이 지나니까 적응이 되더라고요. 
또 체력적인 부분도 많이 힘들었어요. 저는 그래도 운동신경이 있고 운동을 좋아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훈련이 힘들었죠. 대통령 경호실 같은 경우는 여러 기관들이 함께 협동을 해서 대통령 경호라는 하나의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그 기관들의 업무를 다 이해할 수 있는 훈련을 받거든요. 그래서 공수, 유격, 해상특공, 사격 등 특수훈련을 받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내가 이런 거 몰랐으니까 지원했지 알았으면 지원 안 했을 거야’라는 생각도 했어요. 친구들이 장난으로 절 부르는 세 개의 타이틀이 있는데 이대 나온 여자, 청와대 나온 여자, 군대 갔다 온 여자예요.(웃음) 어쨌든 처음엔 그런 부분이 너무 힘들고 낯설었는데 다 해내고 나니까 ‘이런 힘든 훈련도 버텼는데 앞으로 못 할게 뭐있을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경험이었죠. 
  
Q.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에 소속되어 전 세계의 국빈들을 만나보기도 하고, 남들은 겪어보지 못할 다양한 경험들을 많이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경호관 생활을 하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또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느낀 점도 궁금합니다. 
여성 경호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것이다 보니 다양한 일들이 있었죠. 하루는 지방에 출장을 가서 회의를 했는데 장소가 경찰서였어요. 그런데 그 경찰서장님이 지나가는 저를 보시더니 “커피 한 잔”  이러시는 거예요. 어리고 여자니까 아마 여경인줄 아셨나 봐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일단 커피를 타서 갖다 드렸어요. 그리고 나중에 전체 회의를 할 때 제가 청와대 경호실 담당자라고 소개 하니까 갑자기 얼굴색이 안 좋아지시더라고요.(웃음) 회의가 끝나고 저에게 사과를 하셨죠. 
또 저는 영문과라 국빈팀에 배치가 됐었어요. 그래서 외국에서 방한하는 대통령이나 행정수장들을 경호했었는데 아베신조 일본 총리나 콘돌리자 라이스 前미국국무장관 같은 웬만한 나라의 대통령들은 다 근접에서 경호를 했어요. 국빈 경호 시에는 미국에서 선발 경호팀이 오는데 그들은 굉장히 덩치도 좋고 체격이 우람합니다. 또 유사시에는 입고 있던 버버리 코트를 벗으면 영화에서처럼 완전 방탄이 되는 불릿 프루프(bullet proof)가 등장하죠. 그만큼 체격조건이 좋은 친구들이 경호를 하는데 한 번은 제가 선발팀장이라고 소개하니까 자기들끼리 “unbelievable!” 하면서 웅성웅성하더니 회의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에게 숨기고 있는 걸 내놓으라면서 닌자냐고 묻더라고요. 그리고 중동 같은 무슬림국가 경호원들도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차를 탔을 때 저를 보면서 누군지 궁금한데 묻지는 못하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계속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했어요.(웃음) 그래서 실제로 그 분들이 고국으로 돌아간 후 한국에 여성 경호원이 있더라는 말을 전해서 그 교육 과정을 전수받길 원한다는 요청이 경호실로 많이 오기도 했어요. 여자 경호관을 자기네 교관으로 파견을 해달라는 거였죠. 그래서 실제로 지금 아랍에미레이트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 경호관들이 가서 여성 경호관을 교육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경호관으로 일하면서 많은 돌발 상황도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 같은 경우는 당시 한미 FTA가 중요한 이슈여서 이동경로를 중간에 몇 번이나 바꾼 적도 있어요. 예를 들어 A에서 B로 가는데 처음에 1안을 설정했다가 2안, 3안, 4안까지 경로를 혼선을 주는데도 기가 막히게 알아내서 계란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대통령 방한 때에는 시위대가 와서 분신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어요. 또 모터케이드라고 해서 기동경위대가 대통령 차량과 그 뒤의 차량들 주변을 순찰차나 모터사이클을 타고 경호하기도 하는데, 모터사이클을 타다가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시는 분도 봤고요. 그런데 아무리 그런 돌발 상황이 생겨도 어떤 상황이든 경호관은 경호해야 하는 인물의 안전을 위해 맡은 임무를 수행해야 했죠.

Q. 10년을 몸담았던 나라의 녹봉을 받는 안정적인 경호관 생활을 그만두고 배우의 길을 걷고 계십니다. 경호관과 배우, 상당히 다른 직종인데, 연기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또 진로를 바꿔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포기할 때 걱정되는 부분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무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연극을 보거나 뮤지컬을 볼 때 ‘나도 저 자리에 서서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또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대학생 때도 생방송 리포터 같은 방송 일도 조금 했었고, 또 경호관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이나 소명의식을 가지고 경호실을 들어간 건 아니었거든요. 경호관들도 ‘경호관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 진다’는 얘기를 해요. 실제로 같이 훈련을 받고 여러 힘든 상황에도 부딪히고 나면 소명의식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내가 경호하는 건 우리나라 대통령 한 사람이 아니라,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선출한 대다수의 뜻인 거잖아요. 그런 일종의 행정기관을 경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책임감이 엄청나게 큽니다. 만일 대통령이 잘못된다고 하면 그 사람 한 명이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안보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난 뒤로는 경호관 일을 한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좋았어요. 어차피 한 번 살다가 죽는 거, 이런 훌륭한 기관을 대표해서 죽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리고 부모님도 제가 이 일을 하는 걸 많이 좋아하셨고요. 병원 같은데서 제 이름 옆에 ‘대통령 경호실’이렇게 뜨는 걸 보고 병원 관계자 분들이 질문하면 “쉿, 보안이에요”하시면서 웃고 하셨죠. 속으로도 많이 뿌듯해하셨던 터라 제가 경호실을 나온다고 했을 때도 정말 아쉬워하셨어요. 그래서 한 번은 밤샘 당직을 하면서 ‘경호실을 나가야 하는 이유 & 나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종이에 쭉 써봤어요. 그런데 나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안정적인 생활, 복지, 연금, 명예 등등 너무 많은데 나가야 할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였죠. 그래서 이 나가야 할 이유가 나가지 말아야 할 이유 이상의 당위가 있는가를 깊게 고민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저울질 자체가 개인의 가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제가 죽기 전에 ‘아 그 때 그냥 그 일에 도전해볼걸’하는 후회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못 견딜 것 같았거든요. 물론 배우라는 길을 선택해서 잘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지만 일단은 노력을 하고 안 되면 그 때가서 책임이라도 질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전혀 도전조차 안 해보고 후회하기는 정말 싫었기 때문에 몇날 며칠을 부모님을 설득하고 나서 회사에도 말씀을 드렸죠. 그 때만 해도 30대 중반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배우에 도전하겠다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그냥 이제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고 사표를 냈어요. 물론 주변에서 선후배, 동기들 모두가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말렸지만 결국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에 경호실을 나오게 됐어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왔는데, 사실 처음부터 잘 되는 일은 없잖아요. 제가 어느 학교를 나오고 어디서 일을 했는지는 배우라는 직업에 있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더라고요. 아무리 이력이 화려해도 배우가 결국에 연기를 못하면 소용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경호실을 나오면서 받은 퇴직금을 거의 탈탈 털어서 좋다는 선생님들 찾아다니면서 연기 수업도 받고 개인적으로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을 해도 항상 오디션을 보러 가면 ‘이 나이가 되도록 왜 이렇게 경력이 없냐, 살림하다가 나오셨냐, 외모가 그렇게 예쁘지도 않은데 되겠어요?’ 이런 말들을 많이 들었어요. 처음엔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고 더 열심히 오디션을 보러 다녔고, 제 진심을 알아주시는 분들이 생기면서 하나 둘 씩 붙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처음엔 정말 단역부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대사도 늘고 출연 회차도 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제작사에서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도 많아졌죠. 
  
Q.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가운데서도 출연하신 한중합작드라마 <최고의 커플>이 중국 플랫폼사이트 ‘유쿠’에서 10억뷰를 기록했습니다. 어렵게 배우의 길로 들어선 만큼 더욱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은데요.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계기나 촬영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한중합작 드라마 <최고의 커플>같은 경우는 굉장히 스케일이 큰 드라마였어요. 배우 이다해씨가 여자 주인공, 슈퍼주니어-M의 조미씨가 남자 주인공이었고 다른 출연진도 유명한 분들이셨죠. 처음 제작사에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는 신인이니까 이미지 단역이라고 해서 대사도 없고 과거 속 회상씬에 나오는 역할을 맡게 됐어요. 그런데 오디션에서 욕심을 가지고 몇 번씩 준비된 사람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니까 분량을 확 늘려서 여주인공의 절친 역할을 맡을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그 제작사와의 좋은 인연으로 엑소의 수호씨와 배우 이세영씨가 주인공인 방송 예정 웹 드라마 <하와유브레드>라는 작품에도 출연하게 됐습니다. 거기서는 수호씨와 경쟁하면서 치파오를 입고 무술하며 빵을 만드는 재밌는 캐릭터를 맡았어요.
<최고의 커플>에서는 강원도에서 촬영했던 나이트클럽씬이 기억에 남는데요, 이다해씨와 제가 고등학생 시절 나이트클럽을 빌려서 노는 장면이었어요. 정말 수많은 스텝들이 보는 가운데 어색함을 무릅쓰고 미친 듯이 춤을 춰야하는데 제가 경호관을 했다 보니 몸이 참 뻣뻣하거든요. 촬영 끝나고 춤을 왜 이렇게 못 추느냐고 꾸중도 들었죠.(웃음) 그리고 그 날은 하필 또 폭설이 왔던 날이라 촬영을 위해 차를 타고 강원도까지 왕복 9시간 정도를 운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힘들기 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러 간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더라고요. 사실 소속사가 있는 배우들은 매니저가 운전을 해서 쉽게 이동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아직 소속사가 없거든요. 계약하자는 회사들은 있었지만 어렵게 시작한 만큼 밑바닥부터 경험해보자는 생각도 있고, 경호관 때의 습성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경찰이랑 일을 하려면 경찰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 했던 것처럼 제가 배우이기는 하지만 매니저나 회사랑 일을 하려면 그 일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제가 스스로 운전하고 다니고 헤어, 메이크업도 직접 받으러 다니고 하죠. 
  
Q.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역할이 있으신가요?
사실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 맡았던 역할 모두 하나하나 다 기억에 남아요. 일단 <푸른바다의 전설> 같은 경우는 정말 짧은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다른 일정과 겹쳐서 출연을 할까 말까를 고민했는데 그 장면이 전지현씨, 이민호씨, 문소리씨, 이희준씨가 모두 등장하는 장면인데다가 특별히 평소에 정말 좋아하던 문소리씨와 일대일로 대화를 주고받는 부분도 있어서 출연하게 됐죠. 또 <대박>에서는 제가 기생역할을 맡아서 장근석씨와 연기하는 장면이었는데 4월 초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촬영이고 한복을 입고 있다 보니 너무 추워서 덜덜 떨면서 촬영했던 기억도 있고요. 
제가 이 분야에 몸담은 지 이제 3년차 이지만, 부끄럽게도 포털 사이트에 제 이름을 치면 활동 작품이 다 뜨더라고요. <푸른 바다의 전설>, <미녀 공심이>, <대박>, <욱씨 남정기> 등등 작년, 재작년에 인기 있었던 드라마에 단역이지만 많이 출연을 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작사에서도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많이 활동을 했으면 정말 부지런하게 뛰어다녔다보다고 신기해하더라고요.(웃음) 
  
Q. 경호관이라는 직업과 배우라는 직업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단 두 직업 모두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경호관은 자신이 맡은 VIP에 대해서는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경호해야 하고 항상 심기를 잘 살펴야 해요. 단순한 안전문제 뿐만이 아니라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까지 한 발 앞서서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VIP가 차에 탔다면 손 닦을 물티슈를 준비한다든지, 흡연자라면 무슨 담배를 피시는지, 냄새를 없애기 위해 방향제를 준비한다든지 이렇게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또 경호관은 VIP 주변의 모든 사람이 위해자가 될 수 있다고 교육받거든요. 그래서 항상 주변을 살피면서 ‘저 사람 뭔가 수상한데? 주머니에 뭘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 ‘저 사람 뭔가 이상한데, 확인해볼까?’이런 생각을 계속 합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인물에 대해서 주의 깊게 관찰하는 습관이 생기죠. 배우도 이와 비슷한 것 같아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려면 해당 역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하기 때문에 그 인물을 애정 있게 바라보게 되죠. 그리고 그러다보니 예전에는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을 딱히 이해하려 하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았었는데 지금은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하려 하다 보니 절로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자꾸만 사람을 관심 있게 관찰 하는 게 공통점인 것 같아요. 
반면에 차이점은 ‘감정 표출’인 것 같아요. 배우는 감정을 잡고 연기를 하려면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공감시켜야 합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남에게 공감시킬 수 있을 만큼 잘 표현 하고 드러내야 하는 소통의 직업이라면, 경호관은 절대 그러면 안 되거든요. 어떤 상황에서도 경호관은 이성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무감각하고 냉정해져야 해요. 제가 경호관으로 근무할 당시 휴양지에 갈 일이 있었는데 제가 경호하는 VIP가 경호관들 너무 고생한다고 바나나보트를 한 번 타고오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극구 거부하다가 결국에는 타러 갔는데 바나나 보트는 타면 소리를 안 지르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비명도 지르고 웃으면서 탔는데 나와서 선배한테 엄청 혼났어요. 어디 경호원이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느냐고 말이죠.(웃음) 저도 사람이다 보니 수해나 지진 피해복구 현장을 가면 눈물이 나고, 월드컵 현장 같은 곳에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데 경호관은 그러질 못하거든요. 모든 사람이 현장에 집중하고 있어도 누군가는 VIP를 위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해요. 그게 습관이 되다 보니까 감정을 표현하기는커녕, 느끼는 것조차 어색한 거예요. 날카롭고, 무감각하고 무표정한 것이 익숙했죠. 그래서 저희 가족들도 제가 경호관 시절에는 좀 무섭고 싸늘해서 말 붙이기가 힘들었는데, 배우가 되고 나니까 훨씬 인간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Q. 이번엔 학창시절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화 재학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저는 학교에 잘 안 나오는 학생이었어요.(웃음) 그때 당시 집이 인천이어서 1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오는 게 저한테 너무 멀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시간표를 짤 때 며칠만 학교를 바짝 나올 수 있도록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을 몰아넣었죠.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과외도 하고 잡지모델일도 하고, 3,4학년 때는 방송 리포터 일도 했었어요. 저는 영문과지만, 외국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온 경험도 전무하고 국내에서만 영어를 공부한 케이스에요. 그런데 저희 때는 국제학부가 없어서인지 외국에서 공부해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친구들이 영문과로 대거 들어왔었어요. 학교에 입학해보니 친구들이 영어로 대화를 하고 교재도 다 원서에, 교수님들도 영어로 수업을 하셔서 조금 당황했었어요.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게 당시 영문과의 최영 교수님께서 “이번 학기 우리는 ‘함릿’을 배우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시기에 ‘함릿이 뭐지?’ 하고 한참동안 고민한 적이 있었어요. 그게 햄릿이라는 걸 알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런 분위기가 너무 힘들어서,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 따라잡기 위해 영어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필사적으로 하니까 영어가 많이 늘더라고요. 졸업할 때가 되어서는 친구들과 무리 없이 소통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어요. 인생에서 할 영어 공부를 그때 다 한 것 같은데, 그걸 지금도 많이 우려먹고 있어요. 경호실에서도 제가 웬만한 통역 업무는 맡아서 했고, 후배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거든요. 
  
  
Q. 이화 재학시절 기억나는 일이 있으신가요?
제 지도교수님이시자 제가 아주 좋아했던 영문과 강태경 교수님의 ‘연극의 이론과 실제’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시험으로 교수님 앞에서 햄릿의 명대사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을 연기해야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너무 낯설어서 자신 없이 읊조리고 말았던 것 같은데, 그때 내가 만약 지금처럼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면 좀 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 자주 놀러 다니고, 알바도 하고, 미팅도 많이 했어요. 정문 앞에 그 당시에 미팅의 성지로 여겨지던 커피숍도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것 같아요. 또 제가 들어가려고 했던 치어리딩 동아리 파이루스의 단장이 당시 제 남자친구의 첫사랑이라는 걸 알게 돼서 지원을 접었던 기억도 나네요.(웃음) 
제가 이화에 다닐 때만해도 학교에 운동장도 있고 신단수도 있었어요. 이화교가 있어서 그 아래로 지나다니는 기차 꼬리를 밟기도 하고, 학교로 오는 길에 토스트 아저씨에게 토스트 하나 사서 전속력으로 대강당 계단을 올랐던 기억도 나네요. 경호실에 들어가고 난 뒤에 이화여대에서 행사가 자주 있었어요. 외국에서 온 여성 국빈들이나 영부인 등, VIP께서 이화여대를 방문하는 행사가 많이 있었는데, 모교에 왔으니 네가 안내하라며 선배들이 저를 부추기곤 하셨죠. 그런데 오랜만에 와본 학교는 너무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처음 ECC를 봤을 땐 ‘이화교가 없다고? 라며 당황했더니 선배들이 이대 나왔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냐며 놀리기도 했어요. 
   
Q. 선배님께 ‘이화’란 무엇인가요?
이화는 저의 자부심이자 자산이에요. 지금도 가끔 졸업 반지를 끼고 다녀요. 사실 저는 주변 어른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이화에 왔기 때문에 처음 학교를 다닐 땐 위화감을 많이 느끼기도 했죠. 전국에서 공부 잘한다는 학생들도 많이 오고, 세련된 친구, 집이 잘사는 친구들도 정말 많았거든요. 하지만 제가 이 안에서 그렇게 다양한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살았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여성으로서의 자존감을 많이 채워준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는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는데, 졸업하고 나니 정말 이화는 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화 동문들을 정말 곳곳에서 만나거든요. 아나운서부터 시작해서 외교부의 중책을 맡으신 분들, 국제기구의 기관장까지…. 그분들이 처음에는 저를 어려워 하시다가도, 제가 먼저 그분들께 ‘안녕하세요, 저 이화여대 후배입니다!’ 하고 살갑게 다가가면 그분들도 정말 반갑게 맞아주셔요. 서로 무언의 동질감 같은 걸 느끼나 봐요. 또 밖에 나가면 이화 출신에 대한 선입견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개의치 않고 매사에 열심히 임했더니 그런 저를 보고 주변 분들이 점점 그런 편견을 버리게 되는 경험도 했죠.
  
Q. 지금은 '청와대 경호관 출신 배우'로 많이 소개가 되고 있는데요, 앞으로 대중들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저에겐 항상 ‘경호관 출신’, ‘청와대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니까 조심스러워요. 하지만 지금은 이런 수식어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아직 신인이니까 청와대 경호관 출신인 것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고 다짐해요. 계속 발전해 나아가다가 언젠가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훌륭한 배우들 앞에는 수식어가 붙지 않잖아요? 그냥 이수련을 떠올렸을 때 말이 필요 없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이야기하는데 ‘늦었다’의 기준이 절대적인 건 아니잖아요. 다른 중년 남성배우들처럼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활동을 해도 문제가 아닌데, 유독 여배우한테는 자꾸만 나이를 의식하게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있는 것 같아요. 저는 여배우를 나이로 한계 짓는 분위기를 깨고 싶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금부터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 가면 10년쯤 지났을 때는 더욱 알아주는 배우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훗날 뒤돌아 봤을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배우에 도전했다고 하셨는데, 배우 활동 이외에 선배님이 꿈꾸는 또 다른 도전이 있으신가요? 인생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지금은 배우 일에 집중하고 있고, 나중에 좋은 기회가 된다면 저처럼 다른 도전을 하고 싶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멘토링을 해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그게 강연이 될지 교육이 될지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그렇기 위해서는 일단 제가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야하니까 일단은 배우로서 인정받는 것이 가장 주요한 목표에요. 인생의 목표는...할리우드에도 한번 도전해볼까요?(웃음) 아, 최종목표는 나중에 이화여대에 이수련관 하나 짓는 걸로 할게요.(웃음) 
  
Q. 마지막으로 꿈을 위해 오늘도 정진하는 이화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자신이 원하는 꿈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나고 나면 학창시절이 아주 아름답고 찬란한 시간이거든요. 그 시절을 정말 아깝지 않게 보냈으면 좋겠어요. 연애를 미친 듯이 해본다든지, 돈을 많이 모으고자 알바를 미친 듯이 해본다든지 뭔가 하나에 미쳐봤으면 좋겠어요. 그 순간에 무언가에 열중해 살아간다면, 당시에는 쓸데없는 짓한다며 누군가 여러분을 비난할지 몰라도 나중에는 그게 다 자산이 되어 돌아오더라고요. 요새 단순히 남들 따라서 공무원이나 대기업을 목표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저는 좀 더 진지하게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경제적으로나 현실적인 상황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데, 그 상황에서 꿈을 지킨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죠. 하지만 저의 경우 방송일도 해보고, 공무원도 해봤지만 결국에는 하고 싶은 일로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물론 현실의 벽 앞에서 도전이 쉽지 않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지 못한다면 한번 뿐인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나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실패할 것 같아 두려움을 느끼는 분들,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배우의 길을 고민할 때 제 앞에는 안 될 것 같은 이유가 수 없이 많이 있었어요. 하지만 실패할 것 같은 이유가 백만 가지가 있더라도 그걸 성공할 이유로 바꿔 가면 돼요. 저의 경우에 빗대보면, ‘나이가 많다고? 그럼 나이 많은 역할 하면 돼!’, ‘못생겼다고? 그럼 못생긴 역할 하면 되지!’ 이런 식으로 나의 안 되는 이유를 되는 이유로 뒤집어서 생각해보세요. 결코 쉽지는 않지만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저는 이런 의지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꼭 도전해보라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이수련

자신만의 멋진 삶을 개척하고 있는 이수련 동문과의 인터뷰, 어떠셨나요? 인터뷰 내내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삶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수련 동문의 모습에서 리포터들도 많은 부분을 배우고 감명 받았습니다. 특히 “두려움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지 말고 안 되는 이유는 되는 이유로 뒤집어 생각해보라”는 조언은 더 마음에 와 닿았는데요. 사람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정말 마음가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화인 여러분들도 각자 마음속에 가지고 있을 자신의 미래와 꿈에 후회 없이 당당하게 도전하시기를 응원합니다!

*이화투데이 리포터 8기 전혜진(국어국문학 15), 9기 최혜민(중어중문학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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